실리콘은 플라스틱일까? 실리콘의 원료와 재질 특성

주방 서랍을 열어 보면 실리콘으로 만든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주걱과 집게부터 밀폐용기의 패킹, 베이킹 몰드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손으로 눌러 보면 고무처럼 말랑하지만 합성 소재라는 점에서는 플라스틱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래서 실리콘이 플라스틱인지 고무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료의 구조를 기준으로 보면 실리콘(silicone)은 PP, PE, PET와 같은 일반적인 플라스틱과 구분되는 고분자 소재입니다. 대표적인 플라스틱이 탄소를 중심으로 연결된 고분자 골격을 갖는 것과 달리 실리콘은 규소와 산소가 반복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기본으로 합니다.

이 차이는 화학식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실리콘이 열을 받는 주방용품이나 부드러운 패킹에 사용되는 이유도 이러한 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실리콘과 규소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다른 물질입니다

실리콘을 알아볼 때 먼저 정리할 부분이 있습니다.

영어에서 규소는 silicon, 생활용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실리콘은 silicone입니다. 철자가 비슷하고 한국어로 읽었을 때도 거의 같지만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Silicon은 원소기호 Si로 표시하는 규소입니다.

반도체나 태양전지에 사용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자연에서는 순수한 규소보다 다른 원소와 결합한 형태로 흔하게 존재합니다.

반면 silicone은 규소와 산소를 포함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합성 고분자 계열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주방용 실리콘 주걱과 반도체에 사용되는 규소가 같은 재료인 것은 아닙니다. 실리콘 고분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규소가 중요한 구성 원소가 되지만 완성된 소재의 구조와 성질은 전혀 달라집니다.

실리콘은 정말 모래로 만들까?

실리콘 제품을 설명할 때 ‘모래에서 만든 소재’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출발점을 설명하는 말로는 어느 정도 맞지만 실제 제조 과정은 이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모래의 주요 성분 가운데 하나인 이산화규소, 즉 실리카(SiO₂)에는 규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산업적으로는 규소를 얻은 뒤 여러 화학적 공정을 거쳐 실리콘 고분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를 제조합니다.

이후 규소와 산소가 반복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형성하고 필요한 특성에 맞게 가공합니다.

따라서 모래에 들어 있는 규소 성분과 실리콘의 원료가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모래를 단순히 녹여 굳히면 실리콘 제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리도 실리카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실리콘과 유리가 전혀 다른 재료인 것과 비슷합니다.

실리콘의 성질을 결정하는 실록산 구조

일반적인 플라스틱과 실리콘의 차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고분자의 골격입니다.

PP와 PE 같은 대표적인 플라스틱은 탄소 원자가 이어지는 구조를 중심으로 만들어집니다.

실리콘에서는 규소와 산소가 번갈아 연결된 실록산(siloxane) 구조가 중심이 됩니다. 여기에 여러 유기기가 결합하고 분자의 구조와 가교 정도가 달라지면서 최종적인 물성이 결정됩니다.

이 때문에 실리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모두 말랑한 것은 아닙니다.

주방용품에서 사용하는 실리콘 고무가 있는가 하면 액체 상태에서 도포한 뒤 굳는 실란트도 있습니다. 전기·전자 부품의 절연재나 산업용 씰, 의료 분야에 사용되는 실리콘도 있습니다.

같은 실리콘 계열이지만 요구되는 성능에 맞춰 조성과 제조 방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고무처럼 말랑한 실리콘은 무엇이 다를까?

밀폐용기 패킹이나 실리콘 주걱을 눌러 보면 쉽게 휘어지고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옵니다.

이런 소재는 실리콘 고무(silicone rubber)라고 부릅니다.

실리콘 고분자 사이에 가교 구조를 형성해 탄성을 갖도록 만든 엘라스토머입니다. 손으로 만졌을 때는 일반 고무와 상당히 비슷하지만 화학적 구조는 다릅니다.

천연고무의 주요 고분자 성분은 폴리이소프렌입니다. 반면 실리콘 고무는 규소와 산소가 이어지는 실록산 골격을 갖습니다.

이 구조 차이 때문에 온도가 변하거나 햇빛과 외부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특성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실리콘 고무라는 이름에서 ‘고무’는 천연고무와 같은 재료라는 뜻이라기보다 탄성을 가진 소재의 성격을 나타내는 표현에 가깝습니다.

주방용품에 실리콘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

실리콘 주걱이나 베이킹 몰드를 사용해 보면 부드러운 재질인데도 뜨거운 조리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일반적인 열가소성 플라스틱은 온도가 올라가면 점차 부드러워지고 충분한 열을 받으면 형태가 크게 변할 수 있습니다.

가교된 실리콘 고무는 다르게 거동합니다. 열을 받았을 때 일반적인 열가소성 플라스틱처럼 녹아서 흐르는 형태로 변하지 않습니다.

실록산 골격의 특성도 열적 안정성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오븐용 베이킹 몰드와 주걱, 뒤집개, 냄비받침처럼 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제품에서 실리콘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실리콘 제품에 같은 내열온도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리콘의 조성과 가교 방식, 첨가제에 따라 특성이 달라집니다. 주방용 실리콘 제품도 제조사마다 권장하는 사용 온도가 다를 수 있으므로 실제 사용에서는 제품에 표시된 내열온도를 확인해야 합니다.

밀폐용기 본체가 아니라 패킹에 실리콘을 쓰는 이유

밀폐용기를 보면 서로 다른 재료가 역할을 나누고 있습니다.

본체는 PP나 트라이탄처럼 형태를 유지하기 좋은 소재로 만들고 뚜껑 안쪽에는 부드러운 실리콘 패킹을 넣는 방식이 흔합니다.

패킹은 단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뚜껑을 닫을 때 눌리면서 용기와 뚜껑 사이의 미세한 틈을 채워야 합니다.

실리콘 고무는 압력을 받으면 변형되었다가 힘이 사라지면 원래 형태로 돌아가려는 탄성을 갖습니다. 이런 성질이 밀폐에 적합합니다.

온도가 변해도 비교적 넓은 범위에서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도움이 됩니다.

같은 이유로 텀블러와 물병의 패킹, 각종 주방기기의 씰에서도 실리콘을 사용합니다. 제품 하나에 PP와 트라이탄, 실리콘처럼 여러 재질이 함께 들어가는 것은 각 부품에 필요한 성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추운 곳에서도 실리콘이 사용되는 이유

실리콘은 높은 온도에서만 장점이 있는 소재가 아닙니다.

일부 고분자 소재는 온도가 낮아지면 눈에 띄게 단단해지고 충격에 대한 성질도 달라집니다. 실리콘은 비교적 넓은 온도 범위에서 탄성과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소재로 활용됩니다.

패킹이나 씰에서는 이런 특성이 중요합니다.

온도가 내려갈 때마다 패킹이 지나치게 딱딱해진다면 용기나 기계 부품 사이의 틈을 안정적으로 막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온도 변화가 있는 생활용품뿐 아니라 자동차와 산업용 부품에서도 실리콘 계열의 씰과 패킹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저온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범위 역시 실리콘의 종류와 제품 설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래 사용한 실리콘이 끈적하게 느껴지는 이유

실리콘 주방용품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처음과 달리 표면이 미끄럽거나 끈적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현상이 나타났다고 해서 곧바로 실리콘 자체가 녹고 있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실리콘은 기름기가 많은 음식과 반복적으로 접촉합니다. 표면에 남은 기름이나 세제, 음식물 잔여물이 충분히 제거되지 않으면 촉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기름 성분은 물로만 세척했을 때 잘 제거되지 않습니다.

먼저 제품 제조사가 안내한 방법에 따라 세척하고 충분히 건조한 뒤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척한 뒤에도 비정상적인 끈적임이 계속되거나 균열과 찢어짐, 심한 변색이나 변형이 함께 나타난다면 계속 사용하기보다 제품 상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리콘이면 오븐과 전자레인지에 모두 사용할 수 있을까?

실리콘의 내열성이 알려지면서 생기는 오해도 있습니다.

베이킹용 실리콘 몰드를 오븐에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모든 제품을 오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휴대전화 케이스와 건축용 실란트, 주방용 베이킹 몰드는 모두 실리콘 계열 소재를 사용할 수 있지만 애초에 만들어진 목적이 다릅니다.

주방용 실리콘 제품 사이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레인지용으로 만들어진 제품과 오븐 사용까지 고려한 제품은 권장 온도와 구조가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실리콘과 금속 또는 다른 플라스틱이 함께 들어간 제품이라면 실리콘 부분의 내열성만 보고 전체 제품의 사용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오븐이나 전자레인지에 넣을 제품은 해당 조리기구의 사용 가능 표시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간단합니다.

식품용 실리콘은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주방용품을 고를 때는 ‘100% 실리콘’이나 ‘실리콘 재질’이라는 문구만 확인하고 끝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실리콘은 주방용품에만 사용되는 소재가 아닙니다.

건축용 실란트부터 산업용 부품까지 용도가 매우 넓으며 제품에 필요한 특성에 따라 원료의 배합과 제조 방법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음식을 직접 접촉하는 주걱이나 베이킹 몰드, 패킹 등을 구입한다면 식품 접촉을 고려해 제조된 제품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용 가능한 온도와 세척 방법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리콘이라는 소재 이름 자체가 모든 용도의 적합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리콘은 플라스틱처럼 분리배출하면 될까?

실리콘 제품을 사용한 뒤 버릴 때는 일반 플라스틱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가교된 실리콘 고무는 PP나 PET 같은 열가소성 플라스틱과 가공 특성이 다릅니다.

PP와 PET는 적절한 공정을 거치면 다시 녹여 가공할 수 있는 열가소성 소재입니다. 반면 가교된 실리콘 고무는 열을 가한다고 다시 녹아 원래와 같은 방식으로 성형되는 소재가 아닙니다.

전문적인 실리콘 회수와 재활용 기술은 존재하지만 가정에서 배출되는 실리콘 제품이 일반 플라스틱 재활용 체계에서 모두 처리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금속 손잡이와 실리콘이 결합된 주방용품처럼 여러 재질이 붙어 있으면 분리도 더 복잡해집니다.

실제 폐기 방법은 지역의 분리배출 기준에 따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리콘은 플라스틱과 닮았지만 같은 재료는 아닙니다

실리콘과 플라스틱은 모두 생활용품과 산업제품에 폭넓게 사용되는 고분자 소재입니다. 원하는 형태로 가공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분자 구조를 들여다보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PP, PE, PET 같은 대표적인 플라스틱은 탄소를 중심으로 하는 고분자 골격을 갖습니다. 실리콘은 규소와 산소가 반복되는 실록산 구조가 중심입니다.

이 독특한 구조 덕분에 실리콘은 부드러운 탄성을 가지면서 비교적 넓은 온도 범위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밀폐용기 패킹과 베이킹 몰드에서 실리콘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따라서 실리콘을 단순히 ‘말랑한 플라스틱’이라고 부르면 실제 재질의 특성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겉모습은 고무와 비슷하고 플라스틱 제품을 대신하는 경우도 많지만, 재료의 구조와 가공 특성을 기준으로 보면 별도의 고분자 소재군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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