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실리콘은 낯선 소재가 아닙니다. 주걱과 집게, 베이킹 몰드, 얼음틀에 사용되고 밀폐용기나 텀블러에서는 패킹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같은 ‘실리콘’이라는 이름은 욕실이나 창틀에 사용하는 실란트, 산업용 부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두 같은 실리콘이라면 주방에서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식품용 실리콘은 실리콘이라는 별도의 화학물질 이름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식품과 직접 접촉하는 용도를 고려해 원료와 제조 공정을 관리하고, 해당 제품이 판매되는 국가나 지역의 식품 접촉 재료 관련 기준에 맞도록 제조된 실리콘 제품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주방용품에서는 ‘실리콘 100%’라는 문구보다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제품인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실리콘이라고 모두 같은 제품은 아닙니다
실리콘은 하나의 단일한 재료가 아니라 규소와 산소가 반복되는 실록산 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고분자 계열입니다.
필요한 성능에 따라 조성과 첨가제, 가교 방식과 제조 공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방용 실리콘 주걱과 건축용 실란트가 같은 실리콘 계열에 포함되면서도 전혀 다른 제품으로 사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건축용 실란트라면 틈에 잘 붙어야 하고 비와 햇빛, 온도 변화에 견디는 성능이 중요합니다. 산업용 부품에서는 전기 절연성이나 내후성, 기계적 특성이 우선될 수 있습니다.
주방에서는 조건이 달라집니다.
음식이나 음료와 직접 접촉하고 반복적으로 세척해야 합니다. 주걱은 뜨거운 팬과 접촉할 수 있고 베이킹 몰드는 오븐 안에서 상당한 시간 동안 열을 받습니다. 얼음틀처럼 낮은 온도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같은 실리콘이라는 이름보다 사용 환경의 차이가 더 중요한 셈입니다.
식품과 접촉하는 제품은 무엇이 달라질까?
실리콘 고무를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고분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성질을 만들기 위한 여러 성분이 사용될 수 있고, 고분자 사슬 사이를 연결하는 경화 과정도 거칩니다. 어떤 원료를 사용하고 어떻게 제조했는지가 완성품의 특성에 영향을 줍니다.
식품과 접촉하는 제품에서는 이 가운데 식품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에 대한 관리가 중요합니다.
국가와 지역에서는 식품용 기구와 용기·포장 등에 사용하는 재료에 관련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실제 제품은 판매되는 지역에서 적용되는 식품 접촉 관련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그래서 식품용 실리콘을 ‘인체에 좋은 실리콘’이나 ‘더 순수한 실리콘’ 정도로 설명하면 의미가 모호해집니다.
식품과 접촉하는 사용 환경을 전제로 제조되고 관련 기준에 맞도록 관리된 제품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건축용 실리콘을 음식에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
욕실이나 창틀에 사용하는 실리콘 실란트도 굳고 나면 고무처럼 말랑해집니다. 외관만 보면 주방에서 사용하는 실리콘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요구되는 기능이 다릅니다.
건축용 제품에서는 접착력과 방수성, 내후성, 경화 특성 등이 중요합니다. 음식과 반복적으로 접촉하거나 조리 온도에서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제품이 아닐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건축용 실리콘을 식품 용기의 틈을 막거나 주방용품을 수리하는 데 임의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식품이 직접 닿는 부분을 보수해야 한다면 해당 용도에 적합하다고 명시된 제품을 사용해야 합니다.
제품이 어떤 종류의 실리콘인지보다 제조사가 무엇에 사용하도록 만든 제품인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100% 실리콘’이면 식품용일까?
주방용품을 검색하면 ‘100% Silicone’이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제품의 재질을 파악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정보이지만 이 문구 자체가 식품 접촉 적합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재질 구성과 사용 용도는 서로 다른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제품 구조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겉은 실리콘으로 덮여 있어도 내부에 금속 심이 들어간 주걱이 있고, 실리콘 패킹과 플라스틱 뚜껑을 결합한 밀폐용기도 있습니다.
따라서 ‘실리콘 100%’라는 표현 하나로 제품 전체의 사용 조건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음식과 직접 접촉할 제품이라면 식품용으로 제조되었는지를 먼저 보고, 이후 필요한 온도와 조리기구 사용 조건을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새 실리콘에서 냄새가 나면 문제가 있는 제품일까?
새 실리콘 주방용품을 개봉했을 때 특유의 냄새가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냄새만으로 제품이 식품용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제조와 포장, 보관 과정의 영향으로 새 제품에서 냄새가 느껴질 수 있으며 반대로 냄새가 거의 없다고 해서 식품 접촉 적합성이 확인되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 사용하기 전에는 제조사가 안내한 방법에 따라 세척하고 충분히 건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척한 뒤에도 강한 냄새가 계속되거나 실제 사용 과정에서 음식에 뚜렷한 냄새가 옮겨간다면 제품 상태와 제조사의 안내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냄새는 제품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 식품용 실리콘을 판별하는 시험법은 아닙니다.
잡아당겼을 때 하얗게 변하면 가짜 실리콘일까?
온라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리콘 확인법 중 하나입니다.
실리콘을 잡아당기거나 비틀었을 때 하얗게 변하면 충전재나 불순물이 많이 들어간 저품질 제품이라는 설명이 따라붙기도 합니다.
이 방법만으로 식품용 여부나 제품의 품질을 판별하기는 어렵습니다.
고분자 소재는 늘어나거나 구부러질 때 내부에서 빛이 통과하고 산란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색상과 안료, 제품의 두께와 배합에 따라서도 눈에 보이는 변화가 달라집니다.
흰색으로 변했는지 여부만 보고 ‘가짜 실리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보다 제품의 용도와 표시, 제조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확인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식품용 실리콘도 내열온도는 제각각입니다
실리콘이 주방용품에 널리 사용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비교적 넓은 온도 범위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식품용 실리콘이라는 이름에 하나의 내열온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리콘의 배합과 가교 방식, 제품의 두께와 구조에 따라 사용 가능한 온도 범위가 달라집니다.
주걱은 뜨거운 팬이나 음식과 비교적 짧은 시간 접촉합니다. 반면 베이킹 몰드는 오븐 안에서 장시간 열을 받아야 합니다. 같은 식품용 실리콘 제품이어도 요구되는 조건이 다릅니다.
따라서 ‘실리콘은 몇 도까지 괜찮다’는 일반적인 숫자보다 완성품에 표시된 내열온도를 확인하는 것이 실제 사용에서는 더 중요합니다.
식품용이라고 오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식품용과 오븐용도 구분해야 합니다.
밀폐용기 안쪽의 실리콘 패킹은 음식과 직접 접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패킹이 들어 있는 뚜껑 전체를 오븐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베이킹 몰드나 오븐 매트는 처음부터 높은 온도의 조리를 고려해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전자레인지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실리콘 재질이라는 이유만으로 넣기보다는 해당 완성품에 전자레인지나 오븐 사용 가능 표시가 있는지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특히 내부에 금속이 들어 있거나 다른 플라스틱 부품과 결합된 제품은 실리콘 부분의 내열성만으로 전체 제품의 사용 가능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밀폐용기 실리콘 패킹에는 왜 냄새가 잘 밸까?
밀폐용기를 오래 사용하면 본체보다 패킹에서 김치나 마늘, 카레 냄새가 강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패킹의 구조와 사용 환경을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리콘은 일부 기름이나 냄새 성분과 상호작용할 수 있고, 패킹은 뚜껑의 홈 안에 끼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음식물과 기름이 틈에 남기도 쉽습니다.
강한 향을 가진 음식을 오랫동안 보관하면 냄새가 더 뚜렷해질 수 있습니다.
분리할 수 있는 패킹이라면 제조사의 안내에 따라 주기적으로 꺼내 세척하고 완전히 건조하는 것이 관리에 도움이 됩니다.
패킹에 냄새가 밴다는 사실만으로 식품용이 아닌 실리콘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냄새 배임과 식품 접촉 적합성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플래티넘 실리콘은 무엇이 다른가?
고급 주방용품에서는 ‘플래티넘 실리콘’ 또는 ‘백금 실리콘’이라는 표현도 자주 사용됩니다.
실리콘 고무가 탄성을 갖도록 만들려면 고분자 사슬 사이에 가교 구조를 형성하는 경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플래티넘 실리콘은 이 과정에서 백금계 촉매를 사용하는 방식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백금 촉매를 이용하는 부가경화 방식은 식품이나 의료 등 품질 관리가 중요한 분야의 실리콘 제품에도 활용됩니다.
하지만 ‘플래티넘’이라는 단어를 제품 전체의 품질 등급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완성품의 품질에는 원료와 배합, 제조 공정과 후처리 등 여러 요소가 관여합니다. 백금계 촉매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식품 접촉 조건이나 내열 성능이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제품을 선택할 때는 플래티넘이라는 표현보다 실제 식품 접촉용으로 제조되었는지와 사용 조건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식품용 실리콘을 살 때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
가장 먼저 볼 것은 제품의 용도입니다.
주걱이나 베이킹 몰드, 얼음틀처럼 처음부터 음식과 접촉하도록 판매되는 제품인지 확인합니다. 단순히 실리콘 소재라는 설명만 있고 식품과 접촉하는 용도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한 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제조사나 판매자가 제공하는 제품 정보를 확인합니다.
식품 접촉용 제품인지, 관련 기준이나 시험 정보가 제시되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해외 제품이라면 특정 국가의 기준을 언급하는 것과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적용되는 요건이 반드시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용 온도 역시 실제 용도와 연결해서 봐야 합니다.
뜨거운 팬에서 사용할 주걱이라면 내열온도가 중요하고 베이킹 몰드라면 오븐 사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얼음틀이나 냉동 보관용 제품에서는 저온 사용 조건이 중요해집니다.
전자레인지와 식기세척기 사용 여부도 각각 별도로 확인합니다.
결국 ‘식품용 실리콘인가?’라는 질문과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오래 사용한 실리콘은 언제 바꾸는 것이 좋을까?
식품용으로 만들어진 제품도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걱 끝이 반복해서 마찰을 받으면 손상될 수 있고, 밀폐용기 패킹은 계속 눌렸다가 복원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열과 세척에도 반복적으로 노출됩니다.
단순한 색 변화만으로 교체 시기를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패킹이 찢어지거나 균열이 생기고, 원래 형태로 잘 돌아오지 않는다면 기능이 떨어진 상태일 수 있습니다. 주걱이나 몰드의 표면이 벗겨지거나 심하게 손상된 경우도 상태를 살펴보는 편이 좋습니다.
세척 후에도 비정상적인 끈적임이나 심한 냄새가 계속되고 표면 손상까지 함께 나타난다면 교체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밀폐용기 패킹은 소재 상태뿐 아니라 밀폐 기능도 확인해야 합니다. 패킹의 탄성이 떨어져 음식물이 새기 시작한다면 식품용 실리콘인지와 관계없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렵습니다.
식품용 실리콘은 간단한 자가 테스트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실리콘 제품을 고를 때 소비자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결국 ‘이 제품을 음식에 사용해도 되는가’입니다.
문제는 겉모습만으로 이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부드럽다고 식품용인 것도 아니고 냄새가 없다고 확인되는 것도 아닙니다. 잡아당겼을 때 색이 변하는지를 보는 방법 역시 신뢰할 만한 판별 기준으로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100% 실리콘’이나 ‘플래티넘 실리콘’ 같은 표현도 각각 재질이나 제조 방식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 문구 하나가 식품 접촉 적합성과 모든 사용 조건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제품이 식품과 접촉하는 용도로 제조되었는지입니다.
그다음 실제 사용 환경에 맞춰 내열·내냉 조건과 오븐,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사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면 됩니다.
식품용 실리콘과 일반 실리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겉으로 보이는 색이나 촉감이 아니라 애초에 어떤 환경에서 사용하도록 만들어지고 관리된 제품인지에 있습니다.